미국 박사과정 장학금 받고도 학교를 옮긴 이유, 두 번째 학교에서 찾은 답
박사과정 때, 학교를 한 번 옮긴 적이 있거든. 그때 있었던 일을 들려줄게.
한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박사 지원을 했는데, 한 주립대학에서 장학금을 줬어. 이 장학금은 교수님이 자기 연구비로 주는 것은 아니고, 공과대학 단위에서 주는 장학금이었거든. 조건도 참 좋았어. 월급도 다른 학생들보다 많고, 그 월급에 세금도 안 붙고, 추가로 개인 연구비로다가 $15,000 정도를 지원해 줬어. 게다가 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을 위한 모임도 열어줬는데, 거기서 연구 얘기도 나누고, 인맥도 쌓고 친구도 만들고, 뭐 진짜 좋은 기회였지.
근데 장학금이 전부는 아니더라고.
연구실에 가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어
장학금을 받고 박사과정을 시작하는데, 지도교수님이 두 분이었어. 공동지도교수 체제였는데, 한 분은 실험 연구를 많이 하시는 분(이분이 주 지도교수였어), 다른 한 분은 시뮬레이션 연구를 많이 하시는 분이었지. 보통 우리 분야에서는 실험 연구를 주로 하면 결과를 시뮬레이션이랑 맞춰보고, 반대로 시뮬레이션에 집중하면 개발한 모델을 실험으로 검증하는 식이야. 근데 각 분야에 한 분씩 지도교수님이 계시니 이론적으로는 뭐 최고의 조합이었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거지.
주 지도교수님이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어. 아마 신임 교원 스타트업 펀드로 연구실을 막 시작하는 단계였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앞으로 연구에 필요한 실험 세팅 정도가 아니라 실험 장비 자체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지. 내가 들어가기 1년 전에 먼저 온 중국인 박사과정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1년 내내 부품을 하나하나 사서 붙이고 조립하는 데만 시간을 다 썼더라고. 실험 장비가 없으니 결국 그친구나 나나 연구의 메인은 시뮬레이션이 될 수밖에 없는데, 정작 시간은 장비 만드는 데 다 쓰이는, 참 어려운 상황인 거지.
한국에서 석사할 때는, 실험할 장비들이 제대로 갖춰진 좋은 시설에, 부품 하나가 필요하면 전화 한 통으로 빨리빨리 해결됐거든. 박사과정과 선배들도 많아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물어볼 수 있었고. 근데 여기서는 뭐 모든 걸 하나하나 다 해야 했어. 부품 하나 없으면 온라인에서 회사 찾아서 전화해서 알아보고, 주문하고, 배송받는 데만 몇 주씩 걸리고. 물론 나쁘지 않은 배움의 과정이긴 한데, 사실 우리가 원하는 건 장비가 갖춰진 연구실에서 개인 연구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고 좋은 결과를 내서 졸업하는 거잖아. 근데 여기선 장비 만드는 데만 2~3년은 걸릴 것 같더라고.
장비만 문제가 아니었어. 시뮬레이션도 발목을 잡았거든. 시뮬레이션 경험이 없는데 장학금까지 받았으니 뭐, 빨리 뭔가는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지. 근데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었는데, 아무리 해도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는 거야.
그 프로그램을 만든 회사가 자사 소프트웨어 컨설팅도 하는데, 중국인 수석 엔지니어랑 1년 먼저 온 중국인 친구랑 연락을 해서(개인적으로 아는 사이 같진 않았는데), 찾아가도 되냐고 물어봤어. 약속을 잡고 개인 연구펀드를 사용해서 비행기랑 호텔을 예약하고 그 회사로 찾아갔어. 중국 엔지니어가 모델을 실행시켜 봤는데, 그분도 참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야. 세팅값 문제인지, 프로그램 자체의 한계인지, 결국 명확한 답을 못 들었어.
그래서, 뭐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온 거지
미국에서 풀펀드를 받고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펀드 주는 곳이 너에게 하버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좋은 조건으로 유학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들 알 거야. 근데 나는 참, 돈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연구가 전혀 안 되는 상황이었어. 실험도 안 되고, 시뮬레이션도 안 되고.
게다가 지도교수 두 분이 공과대학 장학금까지 받아서 나를 데려왔는데, 그걸 낭비하고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 뭔가 빨리 보여줘야 하는데 안 되니까 여러모로 적응이 안 되더라고. 여기서 그만두면 1년, 2년 정도는 돌아가는 거니 고민이 많이 되었지. 그래도 뭐, 그만두기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렵지만 잘한 결정이었어.
한국에서 1년 정도 박사과정 재지원을 준비했는데, 사실 딱히 특별한 건 없었어. 뭐 토플이랑 GRE 점수 좀 더 올리는 정도였고, 나머지 시간엔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보냈던 것 같아. 그러고 나서 다시 지원했고, 다음 해에 미국의 다른 주립대학교 박사과정으로 갔어.
그렇게 간 두 번째 학교, 근데 지도교수가 없는 거야
이번엔 좀 특이하게, 지도교수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합격만 된 상황이었어. 보통은 지도교수랑 미리 컨택하고 “펀딩해 줄 수 있다” 하면 지원해서 붙는 식인데, 여긴 그냥 “합격시켜 줄 테니 와서 찾아라” 이런 느낌이었지.
아무튼 가서 보니 학과에 한국인 선배들이 꽤 있었는데, 이야기해 보니 학과에 펀드 여유가 있어, 박사과정을 뽑을 수 있는 교수님이 많지 않다는 거야. 이게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거든. 지도교수가 없으면 애초에 박사과정을 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
셀프펀딩으로 들어가면 사실 대부분의 교수님이 연구실로 받아주긴 해. 돈을 주는 게 아니라 뭐 그냥 공짜 인력이니까. 근데 반대로 생각하면, 지도교수한테 연구펀드가 없다는 건 뚜렷한 연구 주제나 로드맵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보통 하나의 연구를 시작부터 끝까지 로드맵을 잘 짜서, 연구과제에 지원하고, 선정이 되면, 그 펀드로 대학원생들을 뽑고, 학생은 잘 짜인 스텝을 하나씩 따라가면 되잖아. 근데 연구 펀드가 없으면 지도교수 본인도 이 방향이 맞는지 사실 긴가민가한 상태라, 자칫 시간만 허비할 수 있거든. 누가 그러더라고, 박사과정 최악의 상황은 노력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없는 상황이라고.
그렇게, 또 한 번의 어려운 상황에서, 마침 다른 학과 교수님이 박사과정 학생을 구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 연구 과제를 따셨는데, 그 연구를 진행할 딱 맞는 학생이 학과에 없는 상황인 거지. 학과 선배가 관심 있으면 찾아가 보라고 해서 갔는데, 마침 같은 학과에 나랑 똑같은 고민을 하던 동기랑 둘이 이력서를 들고 같이 그 교수님을 찾아갔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서 며칠을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더라고.
계속 기다리다가 결국 내가 직접 교수님을 찾아갔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그랬더니 교수님이 좀 얼버무리시더니, 내가 전에 다니던 학교의 지도교수님께 나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셨다는 거야.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당연히 좋은 얘기가 나올 리 없었지, 뭐. 장학금을 받고 중간에 그만두고 나갔으니까. 게다가 동기를 더 마음에 들어했던 것도 있고. 그래서 동기한테 먼저 기회가 갔는데, 그 친구는 정작 반응이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았다더라고.
반면 나는 한국에서 박사과정 재지원 준비를 하던 그 1년 동안 프로그래밍을 좀 공부했었는데, 마침 교수님이 프로그래밍을 좀 할 수 있는 학생이 필요한 상황이었어. 두 번이나 찾아올 정도의 관심도 있고 필요한 기술도 마침 맞아떨어지니까, 결국 교수님도 나쁘게 보지 않으셨던 것 같아. “일단 한 학기 같이 해 보자”고 하셔서 6개월 정도 일종의 시험 기간을 거쳤는데, 다행히도 초반부터 성과가 나오면서 잘 풀렸어. 그렇게 정식으로 학과를 옮겨서 지도교수님과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됐지.
그 이후에는 만족스러운 박사과정을 보냈지. 교수님이랑 사이도 좋고, 박사과정이 끝날 때쯤엔 논문도 많이 쓰고. 졸업하고 포닥을 1년 정도 한 뒤 교수로 임용됐어. 좀 돌아가긴 했지만, 이 정도면 성공적인 박사과정이었던 셈이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도교수랑 학생 사이가 제일 중요하더라
박사과정을 하면서 주변에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을 봤는데, 지도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가 진짜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고.
박사과정이 보통 4~5년이잖아. 연구를 하다 보면, 성과가 잘 나올 때는 문제가 없지만, 어려움을 만나 정체될 때가 훨씬 많은데, 같은 상황에서도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결과를 가르는 것 같더라. 학생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필요한 부분을 지원해 주고, 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잠시 지치면 휴식할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는 것, 이런 관계 속에서 좋은 성과가 나오더라고. 근데, 막상 교수가 되어서 학생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나도 저게 잘 안 되더라. 다시 생각해 봐도, 지도교수님 참 좋으신 분이었네.